만죽헌 서익(萬竹軒 徐益)선생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유품으로 옥저(玉笛)와 장검(長劍)이 전해오고 있다 옥저는 옥석에 아홉 개의 구멍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들었는데 중앙부분이 단절되어 놋쇠로 접합 보존되고 있다. 장검은 전장 81㎝로 만죽헌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전해온다. 서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헌(萬竹軒), 본관은 부여인이며, 중종 37년(1542) 진남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 2년(156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비변사인 당시 이준민의 천거로 군수가 되고 1585년 의주 목사가 되었으나 탄핵을 받은 이이를 변호하는 상소로 파직당한 후 전북 고산으로 낙향 세심정(洗心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말년을 보냈다.